- 주일 성경 공부 (8.9.2020)
- 성경 공부 듣기
안점식<세계관을 분별하라>
IV. 타 세계관에 대한 성경적 관점
1. 타종교와 타세계관에 대한 세가지 관점
(1) 타 종교는 사단의 작품: 영적 대결이 세계관의 대결이라고 할 때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모두 타종교나 타세계관이 직접적으로 사단으로부터 기원한다는 것은 아니다. 타종교나 타 세계관에도 부분적인 진리는 있다. 예를 들어 불교의 심취한 사람은 마음이 편안해지고 깨끗해지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곧 구원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만일 타종교가 전적으로 사단의 작품이라고 한다면 인간은 자유의지도 없는 꼭두각시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사단의 위해서 전적으로 조정 받는 로보트 같은 존재가 아니다.
(2) 타종교는 선 복음(Pre-Gospel): 즉, 타종교는 복음이 잘 수용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미리 만들어 놓으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대체로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오늘 날에는 복음에 대한 세 가지 태도가 있다. 먼저 유일주의(exclusivism)는 복음이 ‘유일한 길(the only way)’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그 다음 수용주의(inclusivism)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입장으로, 복음을 ‘최선의 길(the best way)’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마지막은 다원주의(pluralism)는 복음을 단지 ‘하나의 길(one of the ways)’ 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종교다원주의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여러가지 길 중에 하나가 아니며, 또 타종교는 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미리 예비해 놓은 작품이 결코 아니다.
(3) 타종교는 일반은총의 발로(發露, expression, manifestation): 타종교에 대한 올바른 성경적 관점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고 인간이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의존하도록 창조하셨다. 그런데 어느 날 사단이 인간에게 다가와서 사단 자신이 타락한 방식대로 ‘네가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라고 유혹하였다. 인간이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것은 더 이상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겠다는 독립선언과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비록 인간이 타락하여 독립을 선언했다고는 하지만 원래 하나님이 창조하신 바 절대자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본질적 속성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여섯살짜리 어린아이가 자유 의지를 가지고 부모가 필요 없다는 독립선언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다고 이 아이가 정말로 독립적으로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즉, 부모에게 의존해야만 살 수 있다는 본질은 전혀 변하지 않는다. 인간은 하나님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할 때에만 참된 행복과 기쁨과 안식을 누릴 수 있고 공허함을 채울 수 있는 존재다. 이러한 인간의 존재의 본질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모든 인간들은 무엇인가 절대적인 것을 추구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돈 버는 것일 수도, 있고 명예를 주고 하는 것일 수도 있고, 예술, 학문, 등에 심취하는 것일 수도 있고, 여러 가지 다른 종교에 수도 있다. 하나님에게서만 채워질 수 있는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서 인간은 미친듯이 무언가를 추구한다. 그러고도 채워지지 않으면 마약이나 술, 도박에 빠질 수도 있다. 이처럼 본질적으로 절대자를 추구하는 성향 이것이 바로 인간에게 남아있는 종교적 본능 즉 종교성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타종교의 경우 인간의 종교성은 잘못된 대상을 지향하고 있다. 이처럼 절대자가 아닌 것이 절대자의 자리에 올라가 있을 때 그것은 우상이 된다. 성경에서 ‘탐심은 우상숭배(골 3: 5)’라고 말씀하는 이유는 탐심이 하나님이 아닌 어떤 것에 절대적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타종교를 단순히 일반 은총 내지 종교성에 발로라고 만 정의해서는 안 된다. 거기에는 그뿐 아니라 인간의 죄성과 하나님에 대한 반역성 그리고 그것을 부추기는 사단의 역사가 섞여 있기 때문이다.
2. 인간의 타락이 가져온 세가지 결과
세계관들의 발생은 인간의 타락 사건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인간이 타락한 후(After the Fall) 크게 세가지 일이 일어났다. 첫째 인간의 인식능력의 전락, 둘째 도덕적인 능력이 전락, 셋째 자연계의 전락이다. *전락(轉落: 타락하여 보잘것없는 지경에 빠짐. downfall or fall)
(1) 인식능력의 전락: 하나님은 아담을 만드시고 난 후에 아담이 생물들을 어떻게 이름 짓나 보시려고 생물들을 그에게 이끌어 오셨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붙인 이름을 그대로 다 인정하셨고 생물들은 아담이 이름을 붙인 그대로 불려졌다. 이처럼 인간이 타락하기 전에는 사물의 본질에 대한 직관력을 포함해서 총체적인 인식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원래 직관력이란 총제적인 판단력과 지식을 가지고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인간의 타락은 지식과 정보를 처리하는 판단능력에 왜곡을 가져왔다. 오늘날 우리가 감정이나 심리 상태에 따라서 동일한 상황에서도 얼마나 다른 판단을 내리는가를 보면 죄의 영향력이 인식과 판단에까지 미치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인간이 잃어버린 인식능력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인식능력이다. 인간은 에덴동산에 있을 때 하나님과 직접적인 교통을 했고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에덴동산에서는 ‘계시’ 필요 없었을 것이고 성경 말씀과 같은 것도 필요 없었을 것이다. 타락 후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점점 사라져갔고 노아의 홍수 후 그 지식은 더욱 희박하게 되었을 것이다. 인간은 왜곡된 인식기능은 이성을 가지고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추구하였고 그 결과 이성과 상식에 근거한 철학, 신화, 사상, 종교와 같은 것들이 생겨났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회복되어야 할 것이 되어버렸다. 그러므로 호세아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사람이 멸망하는 것을 통탄하면서(호6:4) 힘써 하나님을 알자고(호 6:3) 부르짖었다. 바울도 성도들이 하나님을 알도록(엡 1:17)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자라 가기를 소망했다(골 1:10). 그 뿐 아니라 인간은 자신의 본질에 대한 통찰력까지도 잃어버리게 되었다. 인간은 자신이 왜 이 세상에 태어났고,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실존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은 우연의 산물이며, 그 존재의 본질을 불안과 염려라고 말했다. 이러한 불안과 염려는 구체적인 어떤 일로 인하여 생기는 불안이나 염려가 아니다. 인간은 평온할 때에는 그 평온이 깨어질까 봐 불안해한다. 그런 예수님께서는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이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고 세상철학을 정면으로 반박하셨다. 이 평안은 본질적인 불안과는 반대로 본질적인 평안이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우겨쌈을 당하는 것 같은(고후4:8) 어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빼앗기지 않는 평안이다.
(2) 도덕적 능력의 전락: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발생한 사건 중에 주목해야 할 두번째 사건은 도덕적 능력이 전락되었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없던 부당한 욕구들이 생겨났고 이런 부당한 욕구들을 채우기 위해서 인간은 죄를 짓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우리는 여기서 인간성에 대한 낙관록에 뿌리를 두고 있는 세계관들의 허구를 꿰뚫어 볼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Marxism)은 인간성에 대한 낙관론에 근거해 있다. 생산력이 극도로 발달하고 생산관계에 모순이 없는 공산주의 사회는 더 이상의 계급투쟁이 없으며 도덕이 실현되는 이상적인 유토피아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유교의 경우도 맹자의 성선설 계통이든 순자의 성악설 계통이든 본질적으로는 인간성에 대한 낙관록에 근거하고 있다. 왜냐하면 유교는 예의 교육을 통해서 인간의 욕구가 조화롭게 실현되는 이상왕국의 건설을 꿈꾸기 때문이다. 이슬람교도 인간성에 대한 낙관론에 뿌리박고 있다. 이슬람교는 인간의 원죄를 인정하지 않으며 인간의 모든 욕구는 ‘샤리아’라는 법에 의해서 조화되면서 실현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슬람교는 영혼의 욕구와 육신의 욕구를 모두 추구한다. 이슬람의 법 ‘샤리아’에 의해 통치되는 이상적 공동체 ‘움마’를 추구한다. 그러나 인간성에 대한 낙관론에 뿌리박은 세계관들은 인간이 얼마나 부패한 존재인지를 망각하기 때문에 현실성을 상실한 이상주의로 치닫고 만다. 그러나 현실은 이러한 이상적 제도로써 죄와 욕구의 분출을 다스리는데 성공한 이상 왕국은 발견되지 않는다. 성경은 인간의 마음을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으로 간주한다(렘 17:9).
(3) 자연계의 전락: 인간의 타락은 자연계의 전락을 가져왔다.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에게 “땅이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았다(창 3:17)”고 선언하셨다. 타락하기전 인간은 다른 피조물들을 영적인 권위로 다스렸을 것이다. 그러나 타락 후에는 힘의 논리가 작용하는 자연계로 전락되었다. 인간이 하나님의 영적 권위에 복종하지 않음으로써 영적 권위의 질서가 깨뜨려졌고, 다른 피조물들도 인간의 영적 권위에 더 이상 복종하지 않게 되었다. 인간이 하나님께 반역하였으므로 다른 피조물들도 인간에게 반역하게 되었다. 전락된 자연계의 원리는 진화론자들의 명제대로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으로 요약된다. 이처럼 진화론에도 부분적 진리는 있다. 그러나 진화론자들이 가지고 있는 필름은 타락 전의 자연계 상태와 구속의 역사가 완성된 이후의 자연계 상태에 대해서는 끊겨 있다. 즉,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인간 타락후의 자연 질서는 영원한 진리가 아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모든 피조물들이 이러한 구속을 기다리고 있음을 말한다.
“피조물들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들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하시는 이로 말미암으니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들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는 아나니, 이 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롬 8:19-23)
3. 총체적 회복자 그리스도
(1) 존재회복: 사람의 인식능력과 도덕적 능력이 회복된 영화의 상태, (2) 자연회복: 자연계 질서가 회복된 이상적인 자연환경 (3) 문화회복: 인간의 문화에서 죄성의 요소가 제거된 천국문화. 예수님께서는 인간, 자연, 문화의 세가지 총제적 회복과 구원을 위하여 이 땅에 오셨다.
4. 복음의 특성: 미련(Foolishness) & 비밀(Mystery)
(고전 1:23-24)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복음)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foolishness)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전 2:7)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But we speak the wisdom of God in a myste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