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39편]
1. 내가 말하기를 나의 행위를 조심하여 내 혀로 범죄하지 아니하리니 악인이 내 앞에 있을 때에 내가 내 입에 재갈을 먹이리라 하였도다
2. 내가 잠잠하여 선한 말도 하지 아니하니 나의 근심이 더 심하도다
3.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뜨거워서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에 불이 붙으니 나의 혀로 말하기를
4.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 내가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5. 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니이다 (셀라)
6.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7.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8. 나를 모든 죄에서 건지시며 우매한 자에게서 욕을 당하지 아니하게 하소서
9. 내가 잠잠하고 입을 열지 아니함은 주께서 이를 행하신 까닭이니이다
10. 주의 징벌을 나에게서 옮기소서 주의 손이 치심으로 내가 쇠망하였나이다
11. 주께서 죄악을 책망하사 사람을 징계하실 때에 그 영화를 좀먹음 같이 소멸하게 하시니 참으로 인생이란 모두 헛될 뿐이니이다 (셀라)
12. 여호와여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내가 눈물 흘릴 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 나는 주와 함께 있는 나그네이며 나의 모든 조상들처럼 떠도나이다
13. 주는 나를 용서하사 내가 떠나 없어지기 전에 나의 건강을 회복시키소서
“다윗이 불평을 함으로써 범죄하지 않기 위하여 자기의 혀를 억제하는 것이 극히 어려운 일이었으므로, 그가 보여준 모범으로부터 배우기로 하자. 언제나 어려움이 우리를 괴롭힐 때면 하나님에 대한 불경건한 말이 우리들의 입에서 새어나가지 않도록 우리의 감정을 온화하게 하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 칼빈 주석 시편 39편 1절 중에서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하여 더욱 노력하고 인내력을 발휘하고자 모든 애를 쓰면 쓸수록 우리는 세찬 시험을 당하게 된다. 왜냐하면 무관심하고 부주의한 사람에게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거의 가까이하지도 않는 사단이 이러한 사람을 대항하기 위해서는 자기가 가진 모든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 칼빈 주석 시편 39편 3절 중에서
“그는 ‘든든히 선’ 때도, 다시 말하면 인생의 가장 주요한 그리고 생기 있는 때에, 존경받기를 원하고 상당한 영향력과 권세를 가진 사람으로 보여지기를 원하는 사람들에 관하여 이 사실을 선언하고 있다.”
“번영은 사람들을 극히 흥분시킨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자신들의 상태를 잊어버리고, 감각을 잃고, 이 땅 위에서 죽지 않기를 꿈꾼다. 우리가 우리의 생명이 길지 않음을 안다는 것은 극히 유익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 때문에 자신의 불만을 발하고 불평할 때 슬픔의 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지 않으면 안된다. 다윗은 사람이 가장 위대한 상태에까지 올라간 것처럼 보일 때에라도 그는 바람에 불리는 물 위에 떠오르는 거품과 같다고 선언함으로써 진실로 지혜롭게 말하고 있다.”
– 칼빈 주석 시편 39편 5절 중에서
“사람들이 ‘헛된 일에 분요하며’라는 말은 인간의 헛됨에 대한 절정을 보여준다. 마치 그는 사람들이 더욱 스스로 경멸을 당할 목적으로 태어난 것처럼 보인다고 말한 것과 같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림자와 같을 뿐이지만, 마치 어리석은 자들이나 정신이상자들인 것처럼, 아무런 목적없이 성가신 염려와 자신들을 괴롭히는 일에 스스로 가담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자기들의 마음과 몸을 그처럼 해치는 이유가 무엇인가? 자신들은 결코 충분하게 소유할 수 없다고 상상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이득에 대한 채울 수 없는 욕심으로 사람들은 마치 자기들이 정해진 수명보다 백 배나 더 살아야 하는 것처럼, 세상의 모든 부를 강렬히 붙잡으려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진실로 자신들을 위하여 대비하고 있다 그러나 명확한 목적이나 한정이 없이 유익하지 않는 근심으로 끊임없이 자신들을 괴롭히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고 미친 행위가 아니겠는가? 여기서 다윗은 그 열렬하고 억제할 수 없는 욕망들을 정죄하고 있다.”
“우리 생명의 짧은 그 기간보다, 다시 말해서 손바닥 넓이만할 뿐임을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가 모든 불필요한 근심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더 나은 방법도 없다는 것이다.”
– 칼빈 주석 시편 39편 6절 중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없는 데서 모든 것을 창조해 내시는 것을 그 특유한 직임으로 행하시는 하나님에 의하여, 마치 죽음에서처럼 살아나기 위하여 전진하고 더욱 진전하는 것을 익히도록 하자. 왜냐하면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하여 도움을 받아 하늘의 것을 열렬히 사모하게 될 때 헛된 자가 되지않고 진실로 무엇인가가 되기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 칼빈 주석 시편 39편 7절 중에서
“다윗은 기도 중에 점차 열정을 더하고 있다. 그는 첫째로 ‘기도’, 둘째로 ‘부르짖음’, 셋째로 ‘눈물’을 말하고 있다. 이 점층법은 단지 문체를 꾸미고, 다른 말로 동일한 것을 표현하는 수사의 한 형식이 아니다. 이는 다윗이 자기의 상태를 신실하게 마음속 깊은 데서부터 몹시 슬퍼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거 자기를 ‘객’과 ‘거류자’라고 부름으로써 자기의 상태가 얼마나 불행한가를 다시 보여준다.”
“말의 요지는 하나님께서는 만일 그의 자비로 붙들어주지 않으신다면, 우리의 상태가 얼마나 불행하게 될 것인가를 하늘로부터 보고 계신다는 것이다.”
– 칼빈 주석 시편 39편 12절 중에서
*묵상*
사람이 불행한 이유는 죄 때문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은 죄로 인하여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렸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처럼 영원히 살았어야 할 사람은 죄로 인하여 죽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사람의 인생이 손 넓이만큼 짧다고 합니다. 가장 건강하고 영향력 있는 사람이라도 언제 하나님께서 그의 생을 마치게 하실 지 모릅니다. 그래서 다윗의 고백처럼 사람은 진실로 허사입니다. 사람은 짧은 이 생이 끝나면 마치 세상에 없었던 것처럼 그림자와 같이 사라집니다. 그러면서도 사람은 영원히 이 땅에 살 것처럼 재물을 쌓느라고 바쁘게 하루를 보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일을 주신 목적과 전혀 다릅니다. 아담이 원죄를 짓기 전,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동산을 관리하고 동물들을 다스리는 일을 주셨습니다. 세상에 죄가 들어오기 전에 일이 존재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충성하며 하는 일을 신성한 것입니다. 그래서 직업의 귀천을 불문하고 그 목적을 하나님께 둔 다면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소명입니다. 그러나 다윗이 고백하는 사람의 허무하고 악한 죄성은, 단순히 욕심 때문에 목적없이 바쁘게 일한다는데 있습니다. 마치 세상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말입니다.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내는 것이 목적이 되어서 말입니다.
다윗은 이 땅에서 자신이 나그네이며 떠도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였지만, 세상의 나그네였습니다. 이유는 그의 본래 고향은, 마지막 최종적으로 머물 곳은 하나님의 왕국이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께서 예비하신 집으로 들어갈 날을 기대해야 합니다.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사람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께 불순종, 서로 간의 미움, 음란, 거짓, 도둑질, 질투가 가득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아무리 환경이 완벽하여도 아름다운 집에 살고 있어도,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나그네 입니다. 세상에 마음을 두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늘 예수님께서 통치하시는 그 분의 왕국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곳은 천국입니다. 왜냐하면 늘 우리를 비참하게 만들었던 죄가 없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곳은 천국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세상을 공의와 인자로 다스리시기 때문입니다. 완벽한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우리의 소망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의 영혼과 육신을 구원하시는 예수님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