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일 성경 공부 (8.2.2020)
- 성경 공부 듣기
안점식 <세계관을 분별하라>
2부 영적 전쟁의 본질
전쟁에 있어서 먼저 알아야 할 것이 바로 우리가 싸우고 있는 영적 대상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에베소서 6장에서는 영적 전쟁의 대상이 “정사와 권세와 어둠의 세상주관자와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against powers, the rulers of the darkness of this age, spiritual hosts of wickedness in the heavenly places”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영적 존재는 마귀를 정점으로 하는 타락한 천사들의 위계와 역할을 나타내고 있다. 에스겔 28:14은 사단이 원래는 “기름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You were the anointed cherub who covers” 천사들 중의 하나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룹 천사란 하나님의 보좌 주위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수호하는 천하들이다.
(이사야 14:12-15) 12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13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14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15그러나 이제 네가 스올 곧 구덩이 맨 밑에 떨어짐을 당하리로다
이사야 14장에 계명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계명성이 하나님의 뭇 별위에 자기의 보좌를 높이겠다고 한 것은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에 오르려고 했던 사단의 교만을 말하는 것이다. 사단은 이처럼 천사로서의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고 타락하였다. 그러므로 유다서 1:6에서는 사단과 귀신들에게 대하여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 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서 이 땅에서도 약간 그 맛을 볼 때가 있지만, 천국에 갔을 때 우리가 목도하게 될 하나님의 영광은 정말 상상할 수조차 없다. 이 엄청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그룹 천사 중의 하나가 어느 날 갑자기 그 영광에 탐을 낸 것이다. 피조물로서는 도저히 생각해 볼 수도 없는 교만한 마음,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려고 하는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그 천사는 타락하여 사단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사단은 당연히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에 오를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사단이 할 수 잇는 최선의 일을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마땅히 받으셔야 할 영광을 가로채거나 돌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사단이 지금까지 계속해서 하고 있는 일은 모두 그런 일이다. 사단은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피조물들을 숭배하게 하거나, 인간이 자기자신에게 영광을 돌리게 함으로써 하나님이 마땅히 받으셔야 할 영광을 가로챈다. (롬1: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영적 전쟁의 핵심은 무엇인가? 한 마대로 말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걸린 싸움이다. (이사야 42:8)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인간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지으심을 받았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온전히 찬송함으로써(엡1:12) 그 존재의 목적을 실현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날이 있을 것이다. 그 때에 우리가 받게 될 상급은 과연 무엇일까? 필자는 상급의 차이는 곧 ‘영광’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로마서 8:17-18에서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며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한다. 즉,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영광을 나누어 준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는 우리 자신이 이 영광을 취하지 못하게 하신다.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에 대해 하시는 말씀이 바로 이것이다. 바리새인들은 길거리에서 나팔을 불며 구제하고, 큰 거리 어귀에서 서서 기도하고, 금식할 때 슬픈 기색을 하고 얼굴을 흉하게 한다. 예수께서는 그들이 이미 상을 받았다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어떤 상을 받았다는 말인가? 예수께서는 바리새인들이 외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그렇게 한다는 것을 지적하셨다. 바리새인들은 그들의 외적인 경건으로 인하여 이 땅에서 사람들로부터 영광을 받았다. 여기서 우리가 받게 될 상이 다름아닌 ‘영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오직 당신에게만 영광을 돌리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홀로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실 뿐만 아니라, 만일 우리가 이 땅에서 우리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영광을 돌리게 되면 우리가 교만해져서 타락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하나님의 깊으신 배려와 사랑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겸손하게 하나님께 돌렸던 영광을 천국에서 밝히 다 드러내시고 우리에게 그 영광을 나눠주시며 칭찬을 하실 것이다. 영적 싸움은 결론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느냐 돌리지 못하게 하느냐 하는 ‘영광이 걸린 싸움’이라고 볼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의 영적 싸움 – 생활 대결(Life Encounter)
고린도전서 10:31에서는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말씀한다. 이것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는 일들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즉,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의 영광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교회의 일만 하나님의 영광과 상관이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이냐 세상의 일이냐 하는 것은 일의 외적인 형태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다. 무엇이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주께하듯 하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사단은 일상생활에서 그리스도인들을 타락시키고 불의를 저지르게 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한다. 사단은 자녀가 물의를 일으키면 부모가 욕을 먹는다는 원리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로마서 1:29-31은 사단이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을 타락시키기 위한 전술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불의, 추악, 탐욕, 악의,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 수군수군함, 비방, 하나님을 미워함, 능욕, 교만, 자랑, 악을 도모함, 부모를 거역함, 우매함(undiscerning), 배약(untrustworthy), 무정함, 무자비함. 사단은 이런 것들을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도 저지르도록 자꾸 충동질한다. 일상생활에서 영적 싸움은 사단이 사용하는 최고의 전술은 아니지만 가장 보편적인 전술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생활대결에서의 싸움의 원리는 “근신하고 깨어있는 것(벧전 5:8)”이다.
전도와 영적싸움 – 능력대결(Power Encounter)
고린도후서 4:4에서는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 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고 그리스도의 영광은 하나님의 영광이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장 잘 나타난 것이 바로 복음이다. 이 세상 신인 사단은 복음의 광채가 불신자들에게 비취지 못하게 필사적으로 방해한다. 사단은 우리의 믿음 없음과 기질의 약점을 이용해서 언제나 두려움과 부끄러움을 심어준다. 그러나 이러한 두려움과 부끄러움을 이기고 복음을 전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다. 복음전도에 있어서 영적 싸움은 때때로 능력대결의 양상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마귀를 대적할 뿐 아니라 마귀와 직접적으로 능력의 대결을 하게 될 때가 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영적 신분을 확인해 보려면 전도현장에 가보면 된다. 우리는 능력대결이 모세나 엘리야나 바울의 시대에만 있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오늘날에도 능력대결은 일어나고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자녀들에게 마귀와의 대결에서 이길 수 있는 권세를 주셨다. 그러므로 능력대결에서의 싸움의 원리는 “믿음을 굳게 하여 대적하는 것”(벧전 5:9)이다.
세계관과 영적싸움 – 진리대결(Truth Encounter)
영적 대결은 궁극적으로 ‘세계관의 대결’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단은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좇는” 사람들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노략질한다(골2:8). 오늘날 ‘전통’과 ‘학문’이라는 개념은 정도 이상으로 미화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전통의 이름 하에 온갖 우상숭배가 저질러지고 학문의 이름 하에 인간의 이성이 우상으로 숭배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학문의 세계가 영적 전쟁에 있어서 중립지대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현대를 움직이고 현대의 학문을 움직이는 정신은 이성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성주의는 하나의 세계관이다. 그러므로 현대의 ‘학문’이라는 것도 전혀 영적 전쟁의 중립지대가 아니다. 영적 전쟁에 있어서 중립지대는 이 세상에 한 군데도 없다. 중고등학교까지는 껍데기든 알맹이든 교회도 잘 나오고, 부모님 말씀도 잘 듣고, 주일도 잘 지키던 아이들이 대학에만 가면 말도 잘 안 듣고 엉뚱한 소리를 하고 신앙에 회의를 갖는다. 대학에서 가르쳐지고 있는 세속 학문들은 인간의 이성을 가지고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중립적이고 객관적이라고 간주되지만 사실은 거기에 굉장한 영적 싸움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학문의 영역에서 나타나는 영적 전쟁의 대표적인 양상은 진화론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실 진화론은 과학이 아니다. 진화론은 형이상학적 전제를 기반으로 한 굉장히 엉성한 하나의 틀이다. 이 유사과학의 신봉자들은 어떻게 보면 창조론자보다 더 자기들의 신념에 대해서 신앙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진화론은 과학이고 창조론은 신앙이라고 믿는다. 왜 그런가? 성경은 그 답을 예리하게 말해주고 있다.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롬1:28). 창조론에 의하면 인간은 인간이 결코 도달할 수 없는 하나님이라는 최고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은 자기 위에 어떤 최고의 존재를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사실은 이 교만 때문에 인간은 진화론이 과학이라는 암시를 자기자신에게 계속해서 주고 있는 것이다. 세계관 대결이야 말고 사단의 최고의 전술이며 가장 치열한 영적 싸움의 영역이다. 사단은 “거짓의 아비”(요8:44)로서 “광명의 천사로 가장”(고후11:14)하여 비성경적 세계관을 전파하고 마치 알곡 가운데 가라지를 섞는 것처럼 세계관에 혼합주의를 가져온다. 그러므로 진리대결에 있어서 싸움의 원리는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요일 4:1)하는 것이다.
3부 오늘날 세계의 영적 동향
오늘날 세계적으로 두드러진 영적 흐름 중의 하나는 동양사상의 발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을 타고 현대화된 요가나 탄트리즘 등 힌두교 사상이 유럽과 북미 등에서 성행하고, 이들 서구를 통해서 우리나라에까지 수입되고 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영적 동향은 이슬람교의 약진이다. 이슬람교는 50년만에 500%이상 성장해서 지금은 약 12억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힌두교가 가시적이지는 않지만 뉴에이지 운동 등을 통해서 은밀히 세계의 저변으로 확대되고 있다면, 이슬람교는 가시적이고 전투적으로 세계 곳곳에 자기들의 영향력을 확산시키고 있다. 이러한 영적 동향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종교다원주의의 발흥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에 대해서 많은 도전을 받고 있다. 종교다원주의자들은 ‘산의 정상은 하나이지만 산에 올라가는 길은 많은 것처럼 진리는 하나이지만 이 진리에 도달하는 길은 많다’고 주장한다. 허버트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이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1859)’과 손을 잡았다. 스펜서는 진화론은 종교의 영역에 적용시켜 보려고 한 최초의 인물일 것이다. 종교학의 발생은 기독교가 계시된(revealed) 유일한 종교라는 것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었다. 이때부터 인류의 문화와 종교가 하등 상태에서 고등상태로 진화한다는 종교사학적 전제를 가지고 종교의 기원과 발전을 탐구하였다. 이것은 종교의 상대성이란 결론으로 나아갔고 결국 세계는 종교 화합과 통합을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