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과 함께 하는 시편 묵상 [시편 42편]


[시편 42]

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2.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3.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4.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6.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심이 되므로 내가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에서 주를 기억하나이다

7. 주의 폭포 소리에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며 주의 모든 파도와 물결이 나를 휩쓸었나이다

8.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의 인자하심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의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

9. 내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 하리로다

10. 내 뼈를 찌르는 칼 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도다         

11.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하늘로 올라갈 것을 명하지 아니하시고, 우리의 약함을 고려하셔서 우리에게로 내려와 주신다 그런데 다윗은 그가 하나님과 교통하는 신성한 방법이었던 성전에서의 외적 제사로부터 쫓겨났기 때문에, 자기가 하나님께로 나아갈 길이 막힌 것을 알고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고 있다.”

의식은 우리의 연약성 때문에 버릴 수 없는 종교적인 행위임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성전에 가까이 하지 못하게 된 다윗은 마치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떠나게 된 것만큼이나 슬퍼했다.”

   –  칼빈 주석 시편 42 1절 중에서

사람들이 종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이 원수 사단은 너는 무엇을 얻고자 하느냐? 하나님께서 너를 쫓아내셨음을 보지 못하느냐? 분명히 하나님은 성막에서 섬김을 받으러 하시는데 너는 지금 그곳으로 가지 못하며 성막으로부터 너는 추방당한 것이다 라고 말했으리라 생각할 수 있다. 만일 다윗이 성령의 능력에 의하여 부축을 받아 강력하고 활력 있게 저항을 하지 않았다면, 이 말은 거센 공격이 되어 이 거룩한 사람의 믿음을 전복시키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의 감정이 참으로 강한 충격을 받았음은 분명하다.”

우리가 불행 가운데 있을 때, 악인들이 우리를 향하여 개가를 부르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항하고 계신다고 심술궂게 조롱하면, 그때마다 그들로 하여금 우리의 믿음을 넘어뜨리기 위한 말을 하도록 하는 자는 사단임을 잊지 말자. 그리고 이때는 우리가 안심하거나 무관심할 때가 아니며, 극히 위험한 전쟁이 우리를 대항하고 있는 때임을 명심하자.”

     칼빈 주석 시편 423절 중에서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전에 다른 사람들을 성회로 인도함에 있어서 인도자와 지도자의 역할을 했던 다윗은 지금 성전에 가까이 가지 못하도록 저지당한 것을 생각하여 그랬던 것이다.”

     칼빈 주석 시편 424절 중에서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 인자함을 베푸시고

낮에는 그의 인자하심이 나를 향하여 나타나고 밤에는 내 침상 위에서 기쁨의 노래가 나와 함께 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나에게 자비를 베푸실 것을 내 어찌 기대하지 않겠는가라는 말이다.”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

이 절의 끝에서 그가 말하고 있는 기도를 고통과 슬픔을 당한 자의 기도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호의를 보이심으로써, 우리가 자신의 임재 안으로 가까이 갈 수 있게 해주실 때 경험할 수 있는 즐거움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을 자기 생명의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마음속에서 생겨나는 이 즐거움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칼빈 주석 시편 428절 중에서

내 뼈를 찌르는 칼 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칼이 창자나 우리 몸 가운데 부드럽고 신축성이 있는 다른 부분을 찌르는 것보다 뼈에 가해진 상처는 더욱 날카로운 아픔을 느끼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비유를 과장된 것으로 보아서는 안된다. 그리고 만일 누가 다윗이 원수들의 조롱을 자기 마음에 그토록 혹심한 것으로 여긴 이유를 이상하게 생각한다면 자신의 무감각을 드러낼 뿐이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닥치는 모든 비참한 악 가운데, 악한 자들이 하나님의 위엄을 산산조각 내고, 우리의 믿음을 파괴하고 전복시키려는 것을 보는 일보다 우리에게 더욱 더 심한 상처를 입히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칼빈 주석 시편 4210절 중에서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반복되는 이 말씀을 보면 다윗은 같은 싸움을 다시 치를 필요가 없을 만큼, 한 번의 싸움이나 한 가지 비상한 노력의 결과로써 자기가 당한 시험들을 완전히 이기지 못했음을 알 수가 있다. 이 실례를 통하여 우리는 권면을 받게 된다. 사단이 우리를 공격하여 우리가 동일한 괴로움을 다시 받게 된다 하더라도 우리는 용기를 잃거나 스스로 낙심해서는 안된다.”

*묵상*

본 시편은 우리의 신앙을 돌아보게 하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얼마나 가치 있게 생각하는가 입니다. 다윗은 사울을 피해 예루살렘을 떠나 떠돌이 생활을 했습니다. 그 때 다윗의 영혼은 갈급하고 낙망하고 불안했습니다. 이유는 하나님을 예배 드리는 성전에 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모든 곳에 계시며, 사람은 성령을 통하여 어느 곳에서 나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약의 성전은 하나님께서 사람과 함께하시는 것을 뜻하는 임마누엘의 상징적 장소 입니다. 다윗은 예전에 자유롭게 성전에 가서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과 예배 드렸던 날을 추억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것을 이처럼 갈급해하고, 예배 드리지 못해서 영혼이 낙심하고 불안해하는 상태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마치 사슴이 극심하게 더운 날 물을 찾는 것과 같은 상태입니다. 우리는 다윗처럼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갈급 해 하고 있습니까? 예배를 통해 영혼의 양식을 얻습니다. 예배를 통해 무너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합니다. 예배를 통해 구원을 재확인하고 구원자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예배를 통해 함께 구원받은 성도들과 영적인 교제를 합니다. 예배가 없다면 구원받은 성도의 영혼은 반드시 갈급해지고, 낙심되고 불안해 질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필요로 하는지 우리의 영혼의 상태를 점검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기도로 그러한 심령을 구해야 하겠습니다.

둘째는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가 입니다. 다윗이 슬퍼했던 또 다른 이유는 악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훼손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살다 보면 우리의 죄로 인하여 비신자들에게 조롱 받을 때가 있습니다. 지금은 한국의 기독교도 많은 조롱을 받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세상이 교회와 교인들의 실족을 보고 즐거워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이름을 손상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이름은 어떠한 상황에도 손상되지는 않습니다.) 더욱이 우리의 심령이 낙망되는 이유는 하나님의 이름이 손상된 이유가 우리의 죄 때문이란 사실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얼마나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소중하게 생각합니까? 우리의 생각과 말과 인격과 행동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이 손상되지는 않았습니까? 그것을 몹시 괴로워하고 있습니까? 그래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높임을 받으셔야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갈급하고 낙망한 상태로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런 상황일수록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불안해 하는가라고 스스로의 믿음을 북돋았습니다. 하나님은 구원자 이십니다. 우리의 선행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 때문에 우리가 구원받았습니다. 이 그리스도안에 있는 구원의 확신은 모든 악한 사람과 상황을 이기 수 있는 비결입니다